September 2007 Archives
3.
어제 MBC의 인기 오락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을 보니 무한도전 멤버들이 일본에 가서 자기네들을 알아보는 일본인이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해보는 그런 장면이 있었다. 이들이 민망한 개인기를 보여주었던 곳은, 동경의 아키하바라, 긴자, 우에노 공원등이었다.
어제 무한도전의 재미는 무슨 뻘짓을 하던 전혀 반응않는 일본인에 있었다. 노홍철이 저질댄스를 춰도 박명수와 하하가 거성체조를 해도 옆에서 길가던 일본인들을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딱 한번 일본을 다녀왔던 내가 보아도 무한도전의 시도는 무모했다. 일본인들은 기본적으로 남에게는 별로 신경을 쓰지도 않는 것 같다. 그 대신 내가 남에게 신경이 쓰이지않게 자신에 대한 노출을 삼간다.
온천장에 갔을 때 노천 온천이 있었다. 말그대로 건물 밖에 온천이 있는 그런 곳인데, 이곳에 입욕할 때 일본인들은 꼭 수건등으로 몸을 가리고 온천에 들어간다. 건물 안에서처럼 훌러덩 벗고 온천욕을 하다간 눈총을 받기 일수다. 노천 온천도 말이 노천 온천이지 밖에 완전히 노출 된 것도 아니고 거대한 울타리가 있어서 밖의 시선에선 완전히 차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최소한 자기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려 몸에 수건을 두른다.
이러한 일본이기 때문에 아무리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뻘짓을 하더라도 길가던 사람들이 시선을 줄 리가 없는 것이다.
이번 여행 중 해변가 길을 겉은 적이 있는데, 그날따라 일본도 휴일이라서 해변가로 놀러온 사람들이 많았다. 여기저기 모든게 신기해 보이던 나는 거의 똑바르지 않게 두리번 거리며 길을 걸었는데, 문득 인기척이 있어서 뒤를 돌아보니 자전거를 타고서 서핑용 보드를 또 어떤 캐리어에 담고 어딘가로 가던 사람이 바로 내 뒤에 있었다. 분명 '빵빵'하고 클락션을 울려 나를 비키게 하면 그만이겠으나, 그 사람은 내 뒤에서 내가 제대로 가기만을 바라며 기다리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내 뒤에 있던 일본인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하는 그들의 습성 때문에 함부로 클락션을 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1.
추석 연휴때 부모님을 모시고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추석에 시달리느니 여행을 가자는 부모님의 제의로 가게 된 것이서 별다른 준비없이 여행에 임했다. 내가 한 일이라곤 여권을 새로 만드는 정도였다.
지금까지 나에게 일본은 말그대로 가깝지만 먼 나라였다. 먼 미국 여행은 수차례 했으면서도 가까운 일본은 비행기 중간 기착지로도 한 번 방문해 본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최근까지 수없이 본 소설, 실용서적, 영화, 드라마, 예능프로, 음악 등을 통해서 일본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친숙한 나라이기도 했다.
나름 친숙한 일본이건만 난 아직 일본어를 할 줄 모른다. 일본어를 몇 개월 배워본 적이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히라가나와 가타카나가 헤깔리는 수준. 실제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스미마셍, 아리가또가 전부였다.
이번 여행에 가장 문제가 될 법한 것도 일본어였다. 아무리 가이드가 붙고 보여주는 곳만 다니는 그런 한정된 패키지 여행이지만(부모님께서 가능하면 걸어다닌다거나 하는 옵션을 선택하지 않으셨다) 최소한 숫자라도 셀 줄 알아야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 식당에서 점심을 시켜먹을 것 아닌가.
결국 일본에서 난 벙어리와 다름 없었다. 글자는 눈에 익은 한자들(국내에서 쓰는 것과는 좀 다르더라) 몇과 아직도 약간은 어색한 가타가나를 읽어가면서 대략 적응이 되었지만, 의사소통은 몸짓 손짓을 써야만 했다. 이 글의 제목이 벙어리의 눈으로 본 일본인 이유도 다 이 때문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의 처지는 영화 lost in translation에 나온 미국인들과 크게 다를바 없었다. 물론 심각한 차이가 있긴 하다. 내가 나름대로 번역된 일본 문화를 알고 있었던 것에 비해서 영화의 남녀 두 주인공이었던 스칼렛 요한슨과 빌 머레이에게 일본 문화는 애초부터 이해가 불가능한 것이었다(이해 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이들은 언어적 측면에서 나보다 훨 나을 수도 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특급호텔(동경 신주쿠에 있는 파크 하얏트)에선 최소한 영어로라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니까 말이다.
결국 내가 추석 여행중 경험한 일본이라는 것은 의사소통이 배제된 지극히 편협한 눈으로만의 기행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더라도 역시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의 힘은 100번의 간접 체험 보다 큰 인상을 주었다. 미약한 체험이었지만 이렇게 글을 써서 이곳에 올리기로 한 것도 다 이 강한 인상을 나름 정리하고자 함이다.
언젠가 어떤 여성과 와인을 마시러 간 적이 있다. 무엇을 마실까 이야기를 하다가 여자들이 좋아한다는 샴페인을 마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잠깐 아는 척을 했다. 샴페인은 원래 원래 스파클링 와인 어쩌구 저쩌구. 힘들게 희미하게 알고 있는 이야기를 꺼냈건만 얘기를 듣는 여성분 왈 샴페인이 와인이냐는 거다. 전에 한 번 이 분과 와인을 마실 기회가 있었는데 10만원을 넘는 와인을 고르셔서, 꽤나 와인에 대해서 알고 먹는 분인 줄 알았더니만, 안타깝게도 전혀 아니었다.
요즘 어린 사람들은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을 보고 와인을 마신다고 한다. 마치 내가 음악 처음 열심히 듣기 시작할 무렵 '내가 사랑하는 음반' 뭐 이런 책을 보고 음반을 고르던 것과 비슷한게 아닐까 싶다. 문제는 이 만화에 소개된 와인이라는게 너무나 고급의 희귀한 와인들이라는 것. 만화에 소재로 삼을 것이라면 분명 대중적이거나 널리 알려진 것은 아니라는 것쯤은 연상할 수 있어야 하나, 주어진 정보가 그것 밖에 없으니 대중은 그런 와인을 선택할 수밖에. 여기에 교묘한 업자들의 상술까지 합해서 만화를 통한 와인의 선택이라는 이상한 문화현상이 이 땅에는 나타나고 있다.
신의 물방울에 대한 좀 어이없는 기사 중 하나. 언젠가 일본에서 발행하는 격주간지 Brutus에서 만화 신의 물방울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이 무엇인가 하면 이 만화가 한국에서 무지하게 많이 팔렸다는 내용이었다. 왠지 모르게 조롱하는 느낌의 기사였달까.
언젠가 친구 여자친구 부모님이 하셨던 와인바에 간 적이 있다. 거기서 소물리에분께서 하시는 말이, 우리나라에선 코르크 마개로 되어 있지 않는 와인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단다. 분명 돌려따는 병마개를 가진 와인 중에서도 좋은 것이 많은데 단지 마개가 돌려따는 것이라서 외면 받는단다.
어쩌다 한국의 와인 문화가 이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와인 자체가 목적이 되다보니, 와인이 하나의 교양을 과시하는 매체가 되어버린 셈이다. 영화 사이드웨이즈를 보면, 와인 애호가 주인공은 여행가서 사귀게된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자신이 그토록 아껴두었던 피노 와인을 플라스틱 잔에 소주를 부어 마시듯이 해서 없애버린다. 그 스스로 와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였을까. 단지 화가나서 그런 행동을 하리라고 보는건 너무 단순한 생각일 터이다.
어떤 맛 전문가의 말대로 진짜 와인의 가치는 어느 저녁 친구와 소중한 대화를 하며 마시는 싸구려 하우스 와인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와인 자체의 애호도 좋지만, 와인으로 만들어지는 인간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건 의미심장한 이야기였다. 나 스스로도 와인을 그동안 물신화해오지 않았던지 반성을 해본다. 그런 측면에서 며칠 전 부모님과 케익을 먹으면서 함께 마신 샴페인은 올 해 맛본 최고의 와인이었던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