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1.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기에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외교관계를 펼치겠다고 했을 때만해도 나름의 배포가 있었을 것이다. 영어 한마디 못하는 것도 전혀 부끄럽지 않았던 그 아니었는가.
하지만 그의 지금 모습은 취임 때의 그런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이라크 파병 논란이 있었을 때 대통령은 국익을 위해서란 말 한마디로 파병을 결정했으며, FTA역시 개방만이 살길이라며 결국 미국의 요구를 전면 수용하고 FTA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최근에는 심지어 영어를 배워서 부시 대통령과 만나고 싶다고까지 했다.
화성 침략군에게 세뇌 광선이라도 맞았나? 배짱 하나로 정치 인생을 살아온 정치인 노무현이 이렇게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이라는 나라는 멀리서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일단 그 안에 들어가 보면(내지는 그 실체를 접해보면) 그 거대함에 압도당한다. 민간인이 아니라 대통령의 입장에서 미국을 상대하다 보면 그의 생각이 180도 변한 것도 그리 무리는 아닐 것이라고 추측한다.
2.
군시절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카투사병으로 군생활을 했다. 카투사병이라는게 전세계에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로 주한미군부대에 배속되어 한국군의 신분으로 미군과 같이 군생활을 하는 제도임을 아시는 분은 아실게다.
같은 중대에서 일하던 후배 카투사병 추xx는 (자칭) 군산 건달 출신으로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친구였다. 그는 모터풀에서 일을 했는데 그는 카투사병이기 때문에 부당한 일을 겪는다고 생각할 때는 지위를 막론하고 주저없이 이단 옆차기를 미군에게 날렸다.
가능하면 미군과 문제없이 지내다 제대하기를 원하는 대다수의 선배 카투사병들은 추를 다그쳤지만 그는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미군들에게 부당하게 대접을 받으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카투사병은 나름대로 부당한 대접을 받을 경우엔 대부분 별 말없이 부당한 대접을 받아들였다. 군대가 민주주의 원리로 돌아가는 조직도 아니고, 그들과 싸워서 좋을 일 없다는 일종의 보신주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카투사병의 대부분은 유명 대학 출신들이 대부분이어서 소위 말하는 먹물 근성이 뼈속 깊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추 때문에 모터풀에선 미군과 항상 긴장감이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때문에 미군은 함부로 카투사병에게 부당한 일을 시키지 못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추의 방법도 막무가내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위치를 규정하는데 효과가 있었다. 그는 먹물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지위를 획득했던 것이었다.
3.
누구 말대로 일본 투수 마쓰자카가 받는 2년 연봉 정도도 안되는 돈 때문에 미국과 국운을 걸고 벼랑끝 전술을 벌이는 북한의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그들이 얻어내는 주체적(?)인 외교전에서의 승리를 볼 것 같으면 놀랍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미국 것을 적극 받아들이고, 아예 작은 그들이 되고자 하고 있다. FTA가 채결되고 현재의 교육제도나 사회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정말 10년 20년 뒤에는 대한민국은 짝퉁 아메리카가쯤이라도 될 수 있을까?
촛불 시위를 벌여서 한국계가 일으킨 참극을 추도한다고 해도 미국인들이 우리에게 하는 말은 그저 그만 하라는 말 뿐이고, 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 한다고 해도 한국인이 졸업 후에 얻게되는 현실은 쥐꼬리만한 취업비자쿼터 뿐이다.
한반도에 사는 한국인에게 미국은 절대로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에게나 대한민국에게나 결국 남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미국에 나라를 개방하고 그들을 따라한들 한국인은 미국에게 미군에서 일하는 카투사병 이상의 대접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들과 자존심을 구기더라도 문제없이 따르는 것이 옳았던 것인지, 아니면 추와 같이 때론 막무가내 행동이 옳았는지에 대해선 아직도 정확히 모르겠다. 미국과 한국과의 관계도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명확한 것은 우리가 그들이 아니라는 것, 우리가 그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한적이지 않다는는 것을 인식하는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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