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q는 다시 대서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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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킬 오닐 마이애미행...via stoo.com

The Big Lively...다양한 샤킬 오닐 사진들 via nba.com

LA Lakers의 샤킬 오닐이 팀을 옮겼다. NBA에서 10여년간 최고의 센터로 군림했던 샤킬 오닐이 그를 최고로 만든 프랜차이즈 LA를 떠난다는 얘기는 여러가지 채널을 통해서 흘러나왔었다. 아무리 코비 브라이언트와 갈등이 있고, 팀에서 박대를 한다지만, 우승을 3번이나 했던 팀이고, 이제는 나이도 나이인지라 은퇴할때까지 LA에서 끝까지 뛰지 않을까 싶었는데, 마이애미로 옮긴다는 발표가 스포츠 신문을 통해서 났다.

내가 오닐을 처음 알게 된 것은 90년대 초반 SBS에서 매주 해주던 NBA중계를 통해서였다. 그당시 SBS는 새로 개국한 민방이어서 독특한 편성을 보여준답시고 매일 10시부터 11시까지를 각종 스포츠 중계로 때웠었다. 아마 금요일인가가 NBA중계를 했던것 같다.

90년대 초반이야 조던이 펄펄 날때이고 지금은 은퇴한 90년대 스타들이 NBA를 이끌어갈때라는 것은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아는 사실일게다. 일주일에 한 번 화제의 경기를 녹화중계하던 SBS에서는 공룡 (루키) 센터 샤킬오닐이 뛰는 올랜도 매직의 경기를 가끔 방송 해줬다. 요즘도 가끔 KBL의 서장훈을 공룡센터라고 하는데, 그 공룡이란 말은 샤킬 오닐을 설명할때 (한창도 해설위원이었지 아마)가장 먼저 나왔던 말이 아닐까 한다.

오닐의 첫인상은 이름도, 생긴것도 특이한게 대단한 녀석이라는 것이었다. 엄청난 블로킹 능력이나 골대를 부수는 덩크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했고, 그당시 NBA게임은 잘 몰랐지만 최고의 센터가 나타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오닐은 그당시 아마 드래프트 2위로 신생팀(그당시) 올랜도 매직에 지명되었다고 알고 있다. 팀도 생소하고 유니폼도 재미있고, 공룡센터 오닐까지, 그때부터 나는 샤킬 오닐과 올랜도 매직의 팬이 되었다.

미국의 올랜도란 도시를 방문했던게 95년 초였던 것 같다. 군입대 직전에 해외(미국)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는데, 뉴욕 친척댁에 머무르다가 중간에 휴양지 올랜도로 관광을 갔었다. 3박4이간의 일정으로 올랜도에 있는 디즈니월드, 유니버설 스튜디오, 가까이 휴스턴에 있는 스페이스 센터등을 돌아보는 일정이었다.

놀이공원류를 다니는데 적잖이 흥미를 잃었던 나는, 가이드 아저씨에게 부탁해서 올랜도 매직의 경기를 볼 수 없냐는 부탁을 했다. 올랜도까지 왔는데 샤킬 오닐이 나오는 올랜도 매직의 경기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당시는 몰랐는데 원래 미국 프로 농구라는 것이 한국처럼 그냥 현장에 가서 표를 살수 있는 것인줄만 알았었다(인기 없는 팀은 가능하겠지 클리퍼스같은). 가이드 아저씨는 수완 좋게 암표 2장을 2배 가격으로 사서 구해주셨다.

3층 좀 안좋아보이는 좌석이었지만 NBA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니 - 그것도 샤크의 경기를 말이다 - 적지않이 흥분되는 경험이었다. 필라델피아와의 경기였는데, 경기는 일방적인 매직의 리드였다. (지금은 평범한 선수가 된)페니 하더웨이와 오닐 거기에 불스에서 조던과 같이 뛰던 (파워 포워드)호레이스 그랜트의 매치는 정말 최강이었다.

그당시 필라델피아의 센터는 삐리삐리 센터의 대명사 숀 브레들리였다. 그라면 키만 멀대같이 커가지고는 힘도 제대로 못쓰는 그런 류 아닌가. 오닐한테는 한마디로 상대가 안되었다. 오래된 기억이라 명확하진 않지만 샤크가 덩크만 10여차레 링을향에 꼿은 것 같다. 물론 경기도 매직이 이겼고.

한국에 돌아와서 난 입대했고, 훈련소에서 아버지의 편지를 통해 그해 NBA Final에 올란도 매직이 진출한 것을 알았다. 평택에서 미군부대 적응훈련을 받을때 간간히 식당(MessHall) 티비에서 휴스턴 로켓스와의 파이널을 훔쳐보기도 했는데, 결국 아쉽게도 올랜도 매직은 하킴 올라주원이 버티고 있던 휴스턴 로켓스에게 내리 4연패를 당하며 NBA 우승에 실패했다.

이후 샤킬 오닐은 프리 에이전트(?)가 되면서 LA로 이적하고 최고의 전성기를 LA에서 구가하게 된다. 예전에 발렌타인데이와 샤킬 오닐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블로그에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당시가 한참 오닐이 LA 농구 전성기를 이끌던 때였다.

오닐의 이적은 팬으로 볼 때 좀 아쉽다. LA Lakers 팬이라기 보다는 오닐의 팬으로써, LA라는 팀과 그의 궁합이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차례나 우승을 했었고, 아무리 코비가 요즘 난다지만(그도 올해 강간사건으로 이미지 완전 구겼다) LA가 90년대 후반 매직 존슨이 뛸때 이상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솔직히 오닐 때문이었다.

이제는 나이도 들고 팀에서 최고의 위치를 서서히 코비에게 물려줄 시점에서 팀은 그의 자존심을 건드린게 아닌가 싶다. 오닐도 적지 않은 나이에 대륙 건너편 마이애미로 건너갈 결정을 했다면 나름대로 심사숙고를 했을 것이다. 서부지구가 너무 강팀들이 많으니 동부로 가게되면 나이를 감안해도 우승권에 더 쉽게 다가갈수 있다고 생각할수도 있고.

누가 90년대 최고의 센터였냐고 NBA 팬들에게 설문을 돌린다면 여러가지 대답이 나올 것이다. 원조 공룡 센터 패트릭 유잉, 높이와 테크닉을 겸비했던 하킴 올라주원, 깔끔한 플레이의 대명사 데이빗 로빈슨등등등...

모두들 은퇴한 마당에 샤크는 대서양으로 자리를 옮긴다. 부디 강한 모습으로 (조던이 야구하다 복귀해서 펄펄 날았던것처럼) 은퇴할때까지 뛰어주길 그의 팬의 하나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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